[최보기의 책보기]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인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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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Hit 3,801회 작성일Date 18-11-02 14:33본문
[최보기의 책보기]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인 동네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모두의 집'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8-11-02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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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모두의 집' 책표지 |
동물의 왕국, 아프리카 정글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장 늦게 달리는 가젤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가젤 역시 잠에서 깬다. 가젤은 가장 빨리 달리는 사자보다 늦게 달리면 잡아 먹힌다. 사자든 가젤이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목숨 걸고 질주해야 한다. 이러한 장면은 비단 동물의 왕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나서는 우리네 아파트 촌의 풍경은 어떤가?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위아래 층에 사는 이웃을 만날 경우 가벼운 목례나 눈인사를 나눈다면 분위기 매우 인간적인 아파트다. 안부를 나누는 인사와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눈다면 사람 사는 동네다. 대부분은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같이 탄 사람들의 풍경처럼 묵묵히 허공이나 핸드폰에 시선을 둔 채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집안 역시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와 손자, 부모와 자녀 등 동거 가족들이 옹기종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각자의 볼일을 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러니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도 이젠 쓸 일이 없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우리네 삶은 개인이 전부여서 동네, 마을, 공동체 같은 풍경은 전설이 됐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인 동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같은 노래로나 남았다. 어머니들 모여 빨래방망이 두드리며 온 동네 소식 전하던 마을 샘터도, 갑돌이 갑순이 정분 나던 물레방앗간도,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던 이장, 반장도 국어사전에나 남아있다.
그것들이 없어진 자리를 아파트가 채웠다. 아파트는 동네를 잃어버린 어른들의 탐욕을 채워주는 투자의 대상이 돼 오늘도 눈만 뜨면 값이 오른다. 정년퇴직 해 목돈을 손에 쥔 '아버지'들은 너나없이 '갭(Gap) 투자' 대열에 합류한다. 그렇게 오른 집값과 드문 일자리로 청년들은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갇혀 희망을 잃는다. 보다 못한 정부가 나서서 저렴한 청년임대주택이라도 지을라치면 빈민주택 때문에 아파트 가격 떨어진다며 집단행동으로 못 짓게 나선다. 그런 어른들이 청년들의 비출산이나 저출산은 남달리 걱정한다. 자신들의 노후를 책임져줘야 할 후세대들의 숫자가 줄어든다니 불안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탐욕과 표리부동, 우둔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너무 비싼 집값으로 주거가 불안정하고, 육아/교육 비용에 허리가 휘는데도 돈 벌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면 어느 청춘이 결혼을 해 아이를 낳으려 하겠는가?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은 '아파트'라는 집으로 인해 단절된 세대간, 이웃간 벽을 '공동주거마을'로 극복해보자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조합이다. '집은 작아도 집과 집이 모인 마을은 크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길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합이다. 집에 대한 생각만 바꾸면 '저렴한 가격으로 실용적이고 좋은 주택을 마련할 방법이 없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 사람들이 모인 조합이다. 집을 둘러싼 세대전쟁을 세대연합으로 전환, 집을 가진 노인과 방이 없는 청년이 서로의 이익으로 함께 공존하는 '한지붕세대공감'을 실현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조합이다. 비싸서 살 수 없고, 고독해 살 수 없는 '터무니없는 집'을 사람 사는 온정이 넘치는 '터무늬있는 집'으로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조합이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집'은 그 조합원들 각자의 경험과 보람을 새긴 책이다. 요즘 이 분야 책들이 자주 나온다. 국내외 마을공동체 사례를 심층 취재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조현 지음. 휴 출판)도 그 중 잘 읽히는 한 권이다. 이것이 집을 향한 전혀 새로운 추세라면 얼마나 좋을까!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집 / 김수동 외 지음 / 더함플러스협동조합 펴냄 / 1만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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